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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륜의 기록자 — 제3장 〈천일의 고독과 화기(化氣)의 물결〉


불 속에서 자신을 태우며, 현운은 정을 기로 바꾸는 화기(化氣)의 경지를 돌파한다. 

그러나 그 불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닌 내면의 그림자였다.




 칠륜의 기록자 ― 제3장 第1節
〈천일(千日)의 고독(孤獨)과 화기(化氣)의 물결(波動)〉
달이 떠오르지 않는 밤이었다.
하늘은 잿빛이고, 바람은 고요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폐허의 중심에서 현운(玄雲)은 앉아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투명한 막처럼 빛이 번져 있었다.
그 빛은 그의 호흡과 함께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천일(千日).
그가 스스로 정한 수련의 기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인간의 모든 감각을 끊고,
기(氣)만으로 존재해야 했다.
몸은 사라지고, 생각은 무너지고, 남는 것은 단 하나 ―
의식(意識).

“화기(化氣).”
그는 그 단어를 속삭였다.
그 순간, 그의 단전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척추를 타고 올라가며,
온몸의 혈맥으로 퍼졌다.
그의 몸에서 열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길이 아니라, 생명의 떨림이었다.

하루, 이틀, 백일이 흘렀다.
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점점 맑아졌다.
피부 아래로 빛이 흐르고,
혈맥은 마치 유리관처럼 투명해졌다.
그의 심장은 더 이상 피를 돌리지 않았다.
그 대신 기(氣)가 순환하고 있었다.

천일의 수련 중, 그는 수없이 환영을 보았다.
청아의 얼굴, 청운자의 모습,
그리고 진(塵)의 잔영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그러나 그 환영들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는 더 이상 그것들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형상은 흐름 속에 사라지고,
그 자신마저 하나의 파동으로 변해갔다.

“나는 누구인가.”
그의 의식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대신 허공이 대답했다.

“너는 기(氣)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의 몸이 부서졌다.
살, 뼈, 혈관이 빛으로 변하며 흩어졌다.
그는 고통을 느꼈으나, 동시에 자유를 느꼈다.
그의 의식이 허공으로 흩어지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녹아들었다.

그는 자신이 바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구름이 되었고, 빗방울이 되었고, 별빛이 되었다.
그의 의식은 세상의 모든 요소로 분해되었다.
그는 존재의 경계를 잃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흐름 속에서 살아 있었다.

천일째 되는 날,
그의 의식이 다시 수렴하기 시작했다.
산맥의 기운, 강의 흐름,
그리고 인간들의 숨결이 모두 하나로 모였다.
그것들이 그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돌아가라.”
그는 속삭였다.
그의 몸이 서서히 재구성되었다.
빛의 입자들이 모여 살이 되고,
기운이 뼈로 응축되었다.
그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가 아니라 기(氣)가 돌고 있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공기를 보았고, 소리를 들었다.
바람의 파동이 색으로 보였고,
사람의 숨결이 선율처럼 들렸다.
그는 모든 생명이 공명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화기(化氣)…….”

그의 손끝에서 작은 불빛이 피어났다.
그 불빛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것이 닿은 곳마다 생명이 피어났다.
죽은 풀들이 다시 자라고,
바위 틈에서 새싹이 움텄다.
공기가 맑아졌고, 하늘이 빛났다.

그는 스스로가 세상의 일부가 된 것을 느꼈다.
이제 그의 존재는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세상 전체의 호흡이었다.

그 순간, 멀리서 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운, 그대는 이제 기(氣)의 인간이 되었군요.”

그는 눈을 감았다.
“아니, 나는 이제 인간이라 할 수 없지.”
“그럼 무엇인가요?”
“나는 흐름이다.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졌다.”

청아는 조용히 웃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세상의 일부로써 기록하겠군요.”
“그래. 그러나 그 기록은 글이 아니라, 진동일 거야.”

그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이 반응했다.
구름이 회전하며 거대한 문양을 만들었다.
칠륜(七輪)의 고리였다.
그 고리의 중심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하늘을 가르고, 땅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한순간 숨을 멈췄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모든 생명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세상은 다시 살아났다.

그날 밤, 청아는 멀리서 현운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빛의 형체, 흐름의 중심.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칠륜의 두 번째 고리가 완전히 열렸군요.”


칠륜의 기록자 ― 제3장 第2節
〈내면의 불길(佛焰), 천불(天佛)과의 대면(對面)〉
천일의 수행이 끝난 후,
현운(玄雲)은 폐허의 하늘 아래 서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인간의 형태를 벗어났지만,
의식은 여전히 고요하고 맑았다.
그는 바람과 하나였고,
빛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단전(丹田) 깊은 곳에서,
마치 태양이 숨쉬는 듯한 열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화기(化氣)가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그는 결가부좌로 앉아
단전에 집중했다.
그의 의식이 점점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기(氣)가 불꽃처럼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그 불길은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이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그 속에서 한 존재가 걸어나왔다.
거대한 광체,
눈은 태양처럼 빛나고,
피부는 붉은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그의 걸음이 땅을 울렸다.
그의 주위의 공기가 타올랐다.

“……너는 누구냐.”
현운이 물었다.
그 존재가 대답했다.
“나는 천불(天佛).
너의 기(氣)가 스스로를 인식한 형상이다.”

“내 기가…… 나를 형상화했다고?”
“그래.
너는 화기(化氣)를 완성했으나,
그 불길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나는 너의 불길이자, 너의 그림자다.”

그 목소리는 허공을 진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현운의 몸에서 열기가 폭발하듯 일었다.
그의 단전이 요동쳤고,
피부가 타오르는 듯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너는 내 일부라면, 내 뜻대로 사라질 수 있지 않나?”
“나는 사라질 수 없다.
불은 꺼지면 죽는다.
그러나 불의 본질은 죽음을 거부하는 생명이다.”

천불이 한 걸음 내딛었다.
그 발걸음 하나에 땅이 갈라졌다.
그의 눈빛이 현운을 꿰뚫었다.
“너는 나를 다스릴 수 있는가?”

현운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단전의 기운을 돌렸다.
그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솟구쳤다.
그 기운이 불길과 맞부딪혔다.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빛과 불이 부딪히며,
하늘이 갈라지고 번개가 쏟아졌다.
그 충돌의 중심에서,
현운과 천불의 형체가 뒤섞였다.

“불은 정(精)의 잔재고,
빛은 기(氣)의 진화다.
너는 나를 억누르려 하지만,
그리하면 네 의식은 타버릴 것이다.”

천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불길이 현운의 몸을 감쌌다.
그의 피부가 타오르고,
살이 재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다.
너는 내 일부지.”
현운이 외쳤다.
그의 단전에서 푸른빛이 폭발했다.
그 빛이 불길 속으로 파고들었다.
푸른 빛과 붉은 불이 섞이며
보라색 광명이 피어올랐다.

“이게…… 진정한 화기(化氣)다.”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천불의 형체가 흔들렸다.
그의 불길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현운.
너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 불은 네 일부가 아니라,
네 호흡이 되었다.”

그 순간,
천불의 형체가 서서히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이 현운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단전이 불타오르며,
몸 전체로 열기가 퍼졌다.
그러나 그 열은 고통이 아니었다.
온 세상이 맥동하는 듯한 따스한 진동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불길은 바람에 타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와 어우러져 빛을 냈다.
그의 머리 위에서 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천불륜(天佛輪)…….”
그는 중얼거렸다.
칠륜(七輪)의 세 번째 고리가 열린 것이다.

그 순간, 멀리서 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운, 그대의 불이 하늘에 닿았군요.”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불길이 구름 위로 번져,
하늘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나는 불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나는 불이 된 의식이다.”

그 말과 함께,
그의 불길이 천천히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맑은 기운이 남았다.
그 기운이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천불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기억하라, 현운.
불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의 근원이다.”

그 말이 사라지자,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새로운 리듬이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과 땅,
불과 물,
정과 기가 하나로 이어진 맥동이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붉은 새벽빛은 현운의 불길이구나.”

그는 그렇게 천일의 고독 속에서
천불(天佛)을 품었다.



칠륜의 기록자 ― 제3장 第3節
〈불의 침묵(沈默), 통신(統神)의 문(門)〉
하늘은 여전히 붉었다.
그러나 이제 그 빛은 더 이상 불이 아니었다.
천불(天佛)이 사라진 자리에는
맑고 투명한 공명(共鳴)의 파동이 남아 있었다.

현운(玄雲)은 그 파동 속에 서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기(氣)가 흘러나왔다.
그 기운은 소리 없는 음(音)처럼 번져나갔다.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 그와 함께 호흡했고,
그가 내쉴 때마다 별들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하나의 육체로 존재하지 않음을 느꼈다.
몸은 형체를 가졌으나,
그 본질은 이미 ‘의식의 흐름’이었다.
그는 그 상태를 ‘불의 침묵(佛之沈默)’이라 불렀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그 열기는 여전히 내면 깊숙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통신(統神)의 문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입술에서가 아니라,
의식의 심연에서 울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깊었다.
그 중심에는 하나의 점(點)이 있었다.
그 점이 점차 확대되며 문양을 이루었다.
그것은 고대의 상징 ― 칠륜(七輪)의 세 번째 고리, 통신륜(通信輪)이었다.

그는 결가부좌로 앉았다.
손끝을 서로 마주대고, 호흡을 멈췄다.
그의 내면에 작은 불빛이 피어올랐다.
그 불빛은 천불의 잔열이었으나,
이제 그 열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완전한 고요.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세상의 모든 음(音)이 들려왔다.

물의 흐름, 바람의 울림,
심장의 박동, 별의 회전.
모든 것이 리듬이었다.
모든 것이 진동이었다.

그는 그 리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수많은 음들이 뒤섞여,
의식이 흔들렸다.
그러나 곧 하나의 패턴이 보였다.
그 패턴은 질서였다.
그 질서가 곧 ‘법(法)’이었다.

“이것이 신(神)의 언어…….”
그가 속삭였다.
그 말과 함께 그의 의식이 더욱 깊이 내려갔다.
빛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췄다.

그는 끝없는 암흑 속에서 떠돌았다.
그곳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자아는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그의 마지막 생각이 사라지자,
그의 의식은 완전히 정지했다.

그 순간,
무(無) 속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나이자, 나는 너다.”

그 목소리는 천불의 것도, 청운자의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합쳐진 음성이었다.
현운은 그 음성이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우주의 일부로 흩어지고,
우주가 자신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의식이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은 수없이 분열하며 공간을 채웠다.
별이 태어났고, 행성이 회전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보았다’.
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하나였다.

그때, 하늘의 문양이 빛났다.
통신륜(通信輪)이 완전히 회전했다.
그 고리의 중심에서
무수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 빛들이 현운의 머리 위로 흘러들었다.
그의 백회(百會)가 열리며
그의 의식이 하늘과 이어졌다.

그는 느꼈다 ―
모든 생명, 모든 사물,
모든 존재의 의식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슬픔과 기쁨, 고통과 평화가 동시에 존재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너는 신(神)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그럼 나는 신이 된 건가?”
“아니, 너는 여전히 인간이다.
다만, 신의 파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

그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신이란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모든 생명 안에 흐르는 공명(共鳴)의 의식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마에서 빛이 흘렀다.
그 빛이 하늘로 이어졌다.

하늘이 울렸다.
그의 기운이 별의 진동과 일치했다.
그의 몸에서 울림이 퍼져나갔다.
그 울림은 물결이 되어 세상으로 번졌다.

그 순간,
청아(靑雅)가 멀리서 그 빛을 보았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현운…… 당신은 통신의 문을 열었군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은 빛으로 변해 공중에 떠올랐다.
그 빛이 하늘의 파동과 섞였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날 밤, 세상은 전혀 다른 침묵으로 덮였다.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모든 존재가 그 침묵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현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의 목소리가 공기 속으로 퍼졌다.
“이제 나는 듣는다.
세상의 숨결, 별의 언어,
그리고 신의 침묵을.”

그 말과 함께,
통신륜(通信輪)의 고리가 완전히 닫혔다.
그 고요 속에서,
그는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

그것이 바로 통신(統神) ―
신과 마음이 통하는 문이었다.


칠륜의 기록자 ― 제3장 第4節
〈통신(統神)의 리듬(律動), 세계의 울림(共鳴)〉
하늘은 투명했고, 공기는 노래했다.
현운(玄雲)은 폐허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은 바람 속에 녹아 있었고,
그의 의식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잊고 있었다.
그는 이미 통신(統神)의 문을 통과한 자였다.

이제 그는 신(神)의 언어를 ‘듣는 자’이자,
세상의 음(音)을 ‘되돌려주는 자’였다.
그의 숨결 하나에 바람이 불었고,
그의 맥박 하나에 하늘이 떨렸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세상이 그 안에 있었다.

그의 이마 중앙, 인당혈(印堂穴)에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은 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그 울림이 땅속까지 스며들었다.
뿌리, 돌, 강물, 벌레, 새, 사람.
모든 존재가 그 울림을 느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생명이
잠시 숨을 멈췄다.
그 다음, 그들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그 호흡이 하나의 리듬이 되어 세상을 감쌌다.

“이것이 통신의 리듬(律動)…….”
현운의 마음속에 청운자(靑雲子)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억하라.
신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파동이다.
말은 분리하고, 파동은 통합한다.”

그의 의식이 깊어졌다.
그는 소리를 보았다.
소리는 빛이었다.
그 빛은 선율을 따라 회전하며
하늘 위에 거대한 문양을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났다.

‘칠륜(七輪).’
그의 의식이 그 문양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진동이 울렸다.
별의 회전, 강의 흐름,
사람의 심장 박동, 새의 날갯짓.
그 모든 리듬이 하나의 곡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 선율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음으로 듣는 울림이었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단전이 반응했고,
그의 기(氣)가 흐름을 바꾸었다.

그의 몸속에서 작은 진동이 일었다.
그 진동이 척추를 따라 오르더니,
백회를 통해 하늘로 솟았다.
그 빛이 하늘의 문양과 공명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그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그 흐름이 순환하며 하나의 고리를 이루었다.

그는 느꼈다.
‘이 리듬은 생명이다.
생명은 들숨과 날숨,
태어남과 사라짐,
그 사이의 흔들림이구나.’

그의 눈이 천천히 떴다.
그의 시야에는 빛이 가득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공기는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는 모든 색이 소리로 들리고,
모든 소리가 빛으로 보였다.

그때, 그의 의식 속으로 누군가의 울림이 스며들었다.
청아(靑雅)의 진동이었다.
그녀는 멀리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그대로 닿았다.

“현운, 들리나요?”
“들린다.
그대의 호흡이 내 맥과 맞닿아 있군.”

청아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지금…… 모든 생명이 그대와 공명하고 있어요.”
“그래.
그러나 그 공명은 위험할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감정이 나를 통과하고 있으니까.”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많은 생명의 감정이 그에게 흘러들었다.
기쁨, 슬픔, 분노, 사랑, 절망, 희망.
그 모든 것이 그의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의 의식이 흔들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이대로면…… 나는 무너진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나 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운, 공명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는 거예요.”
그 말이 그의 의식을 깨웠다.
그는 다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속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바람으로 흩어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맑은 울림이 퍼졌다.
그 울림이 세상으로 확산되었다.
그는 모든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 순간,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 고요 속에서,
그는 완벽한 리듬을 들었다.
그 리듬은 단순했다.
‘하나의 맥동.’
그러나 그 안에는 모든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 리듬을 따라 손을 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빛이 피어났다.
그 빛이 허공에 닿자,
공기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 물결이 점점 커지며
거대한 원형의 파동을 만들었다.

그 파동은 폐허를 넘어,
산과 강을 지나,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그 울림 속에서 새들이 날고,
꽃이 피고,
사람들이 눈을 들었다.

그날, 세상은 처음으로 ‘리듬’ 을 들었다.
그리고 그 리듬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현운이라는 한 인간의 맥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미소 지었다.
“이제 알겠다.
통신이란 신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숨 쉬는 것이었구나.”

그의 말이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그 바람 속에서 칠륜의 네 번째 고리가 희미하게 빛났다.
‘심상륜(心相輪).’
그 고리는 마음의 형상을 담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날 밤,
하늘 위로 새로운 별빛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리듬성(律動星)’ 이라 불렀다.


칠륜의 기록자 ― 제3장 第5節
〈심상(心相)의 문(門), 진(塵)의 그림자(影)〉
세상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알 수 없는 떨림이 숨어 있었다.
현운(玄雲)은 리듬의 파동이 사라진 하늘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의식은 맑고 투명했으나,
그 투명함 속에 미세한 균열이 일고 있었다.

‘이 고요는 완전하지 않다.’
그는 눈을 감고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아직도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림자는 이름도, 형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익숙했다.
그는 그 존재의 숨결을 알고 있었다.

“……진(塵).”
그가 그 이름을 속삭이자,
공기가 울렸다.
하늘이 파르르 떨리며 금빛의 파편이 흩어졌다.
그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형체를 만들었다.

그는 다시 그 얼굴을 보았다.
진(塵).
한때 기록자였고,
지금은 존재의 균열이 되어
모든 의식의 틈새를 떠도는 자.

“우리가 또 만나는군.”
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으나,
그 안에는 오래된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너는 여전히 네 자신을 신(神)에 가깝다고 믿고 있나?”

현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더 이상 믿음의 언어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나는 단지 ‘흐름’을 본다.”
진은 웃었다.
“흐름이라…… 그 말 속에는 무책임이 숨어 있지.”

그의 말이 끝나자,
현운의 주위에 어둠이 피어났다.
그 어둠은 마치 먹물처럼 퍼져나가며
세상의 색을 집어삼켰다.
하늘이 검게 물들고, 땅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오직 어둠과 빛의 경계만이 남았다.

“이게 네 마음의 심상(心相)이다.”
진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너는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너는 세상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이 없다면, 나는 인간이 아니겠지.”
현운의 대답은 담담했다.
그의 손끝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이 어둠을 비췄다.
그러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짙어졌다.

진이 말했다.
“빛이 어둠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
빛은 어둠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 순간,
현운의 몸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일어났다.
그것은 그의 모습과 같았지만,
눈동자 속엔 끝없는 허무가 있었다.

진이 그 옆으로 다가갔다.
“봐라, 현운.
이것이 네 진짜 모습이다.
너는 신의 리듬을 들었다고 착각했지만,
그건 네가 만든 환상일 뿐이야.”

현운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쳤다.
그 그림자가 말했다.
“넌 여전히 ‘의미’를 찾고 있지.
하지만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

그 말에 현운은 미소 지었다.
“그래, 의미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지.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서 불빛이 터져 나왔다.
그 불빛이 그림자를 감쌌다.
그러나 그림자는 타지 않았다.
오히려 빛 속에서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나를 부정하지 않는 거군.”

“부정하지 않는다.
너는 나의 어둠이자, 나의 뿌리다.”

그 말이 끝나자,
진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너는 나와 다르다.”
그의 몸이 서서히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리를 소유하려 했고,
너는 진리를 흐르게 한다.”

그 빛이 현운의 주위를 감쌌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의 의식이 확장되었다.
그는 느꼈다 ―
진의 의식이 자신의 일부로 스며들고 있음을.

그들의 경계가 사라졌다.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존재와 무(無)가
하나의 파동으로 합쳐졌다.
그 파동이 심장의 박동과 일치했다.
그의 가슴이 맥동했다.
그 맥이 세상의 중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속삭였다.
“이제 나는 진(塵)을 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완성했다.”

그 말이 끝나자,
하늘이 갈라졌다.
그 틈새에서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이 땅에 닿자,
검은 어둠이 물러갔다.
하늘은 다시 푸르게 빛났다.

그는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는 새로운 고리가 보였다.
그것은 칠륜(七輪)의 다섯 번째 고리 ―
법계륜(法界輪)이었다.

그 고리가 천천히 회전하며 빛을 냈다.
그 빛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모든 존재의 ‘법(法)’을 반영하는 질서였다.
그는 미소 지었다.
“심상의 그림자를 통과해야 법에 닿을 수 있는 법이지.”

그 순간, 멀리서 청아(靑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운, 당신의 그림자가 사라졌군요.”
“아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나와 하나가 되었을 뿐.”

그의 손끝에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이 하늘로 번졌다.
하늘에 칠륜의 고리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하나의 새로운 별이 태어났다.

그 별의 이름은 심상성(心相星).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만든 첫 번째 별이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별은 인간의 그림자가 빛이 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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